空手來 空手去하니 世上事 如浮雲이라
成墳墓 人去後면 月黃昏 山寂寂을
盞잡고 권하리없으니 눈물겨워 하노라
공수래 공수거하니 세상사 여부운이라 성분묘 인거후면 월황혼 산적적을 잔잡고 권하리없으니 눈물겨워 하노라
[사람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니 세상 일이 모두 뜬구름과 같다 무덤을 남기고 사람은 가버린 뒤라 달도 지고 어둑하니 산은 적막하고 고요하구나 잔잡아 권할 사람이 없으니 눈물만 앞을 가리는구나]
조현명(조현명 1690-1752) : 조선조 영조 때의 상신(相臣) 호는 귀록당(歸鹿堂) 영조 4년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워 풍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 청렴 검소하며 언행이 단정하고 강직하였으며 공사(公私)가 분명하였다 탕평론(蕩平論)을 주장하며 붕당(朋黨)에 참여하지 않음 문집으로 귀록집(歸鹿集)이 있으며 해동가요에 시조 5수가 전해짐
成墳墓 人去後면 月黃昏 山寂寂을
盞잡고 권하리없으니 눈물겨워 하노라
공수래 공수거하니 세상사 여부운이라 성분묘 인거후면 월황혼 산적적을 잔잡고 권하리없으니 눈물겨워 하노라
[사람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니 세상 일이 모두 뜬구름과 같다 무덤을 남기고 사람은 가버린 뒤라 달도 지고 어둑하니 산은 적막하고 고요하구나 잔잡아 권할 사람이 없으니 눈물만 앞을 가리는구나]
조현명(조현명 1690-1752) : 조선조 영조 때의 상신(相臣) 호는 귀록당(歸鹿堂) 영조 4년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워 풍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 청렴 검소하며 언행이 단정하고 강직하였으며 공사(公私)가 분명하였다 탕평론(蕩平論)을 주장하며 붕당(朋黨)에 참여하지 않음 문집으로 귀록집(歸鹿集)이 있으며 해동가요에 시조 5수가 전해짐